[마케팅]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는가?

소비자의 역습

어떻게 해야 잘 팔릴까? 아마 인류가 자신이 생산한 것을 자신이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팔기 시작하면서 갖게 된 고민일 겁입니다.

 

너무 비싼가? 색깔이 튀나? 기능이 별론가? 이도저도 아니면 내가 싫어서 그런 걸까?

 

내가 필요해서 만들 때에는 이런 궁금증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잘 알테니까요. 하지만 남에게 팔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인류가 자신이 생산한 재화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 순간, 아니 물건을 만들 때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그 순간 ‘마케팅’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도 물건을 팔려는 경쟁이 치열할 때의 얘깁니다. 불행히도 인류는 근대 산업사회가 되기 이전까지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었지요.

 

과학기술과 산업생산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인류는 비로소 원하는 재화를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넘쳐나는 생산품을 더 잘 팔기 위해서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잘 팔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이 때, 필라델피아에서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던 엘리아스 세인트 엘모 루이스(Elias St. Elmo Lewis)라는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납니다. 엘리아스 루이스는 소비자가 구매 행동에 이르는 의사결정과정을 주의(Attention), 흥미(Interest), 욕망(Desire), 행동(Action)의 4가지의 위계적 단계로 구분했습니다. 각 단계의 첫글자를 따서, 우리는 이것을 AIDA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위계적’이라는 것은 앞 단계가 달성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주의’를 끌지 못했다면 ‘흥미’를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고객들의 구매행동을 하나의 여정으로 생각하고, 그 과정을 각 단계를 성취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으로 피어나게 된 것이죠.

 

[ 소비자 행동 모델 : AIDA ]

 

 

무엇이든 커지고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하려 들기 마련입니다. AIDA 모델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심리와 의사결정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집니다. 192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롤랜드 홀(Roland Hall)은 욕망(Desire)과 행동(Action) 사이에 기억(Memory)라는 단계를 추가합니다. ‘갖고 싶다’고 해서 당장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Memory) 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 행동(Action)을 한다는 것이지요. 이후로도 AIDMA 모델 외에도 DAGMAR 모델, Lavidge & Steiner 모델 등 다양한 모델이 제시됩니다.

 

[ 소비자 행동 모델 : AIDMA ]

 

 

이런 모델들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있어 TV, 라디오와 같은 매스미디어 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리고 아마 거의 유일한 정보 출처(information source)가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라는 것을 상정하고 있지요. 소비자는 제품에 대해서 알고, 태도를 형성하고, 제품 구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산자가 제공하는 ‘광고’에 상당부분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라면 ‘희드라’라는 세제의 광고를 기억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미디언 정부미씨가 나와서 ‘희드라에 빨래를 담그기만 하세요! 희드라에 빠니까, 희드라!’를 외치면 주부들이 나와 ‘어머, 희드라!’라고 감탄하면서 소비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광고였습니다. 소비자들이 ‘희드라’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흰옷에는 희드라’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가 세제가 떨어졌을 때, 수퍼에 가서 ‘희드라 주세요!’를 외치기를 기대한 거죠. 대형마트도 없고, 온라인 쇼핑도 없을 때에는 이런 전략이 먹혔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정보 처리에 대한 전제 조건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한 인터넷 환경이기에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일방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노출이 곧 수용’으로 이어지던 커뮤니케이션 공식은 깨어지고, 메시지의 선택적 수용과 적극적인 피드백이 가능해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2004년 일본의 광고대행사 덴츠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반영하여 AISAS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 모델은 기존의 모형에 검색(Search) 단계를 추가하여 소비자의 적극적인 메시지 선택의 과정을 포함시켰습니다. 나아가, 소비자의 역할이 구매 행동(Action)에서 끝나지 않고 제품 구매 이후에는 구매에 대한 의견을 온라인 상에 공유(Share)함으로써 다른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정보원으로서 활용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소비자 행동 모델 : AISAS ]

 

 

드디어 소비자는 생산자가 제공하는 정보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공유하는 정보 소비자이자 생산자의 역할로 올라섰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만이 아닙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이, 마케터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기발한 방법으로, 더 재미있고,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제품의 사용법마저도 제조사가 제공하는 사용설명서나 안내문보다는 다른 사람의 사용기를 보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한편, 소비자들이 스스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 내고,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다른 소비자가 생산한 정보를 더 신뢰하는 것을 본 기업들도 발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체험단을 활용한 마케팅 같은 것들이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들일 겁니다. 대놓고 우리 제품이 좋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믿어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여의치 않습니다. 2020년 우리 사회를 강타한 유튜버 뒷광고 논란 기억나시나요? 당시 사람들이 분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솔직하게’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으로 믿었던 사람이 알고보니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고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설령 이렇게 제공된 ‘정보’ 자체에는 거짓이 없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생산자의 영향이 미친 정보는 더 이상 유용한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기사] 유튜버 '뒷광고' 뒤통수 제대로 치다 (미디어 오늘, 2020.08.08)

 

이제 소비자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을까요? 대놓고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나 유튜버가 제공하는 정보는 믿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AISAS 모델의 후손(?)격인 AISCEAS 모델을 살펴봅시다. AISCEAS 모델은 AISAS 모델을 기본으로 하되, 검색(Search) 이후 행동(Action)에 옮기기 전에 비교(Compare)와 조사(Examine)의 단계를 추가한 것입니다.

 

[ 소비자 행동 모델 : AISCEAS ]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무엇을 비교(Compare)하고 조사(Examine)하는 걸까요? 그것은 기업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자신과 비슷한, 아니 비슷하다고 믿어지는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제공하는 인상(Impression)과 정보(Information)입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쿠팡의 리뷰 댓글을 통해,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 등을 통해 특정 제품, 특정 브랜드, 나아가 특정 산업군에 대한 인상과 이미지가 형성되고, 그에 관련된 정보가 유통되며, 이렇게 유통되는 시장의 평가를 주도합니다. 당장 구글에서 특정 제품과 자신이 신뢰하는 커뮤니티 이름을 써넣으면, 믿을만해 보이는(!) 리뷰와 평가들이 쭈욱 나열됩니다. 

 

 

어떻게 해야 잘 팔릴지를 고민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잘 만든 제품을 잘 팔기 위해서는, 대중이 우리 제품과 우리 회사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모니터링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지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추구하는 구매 행위의 영역에서, 우수한 기능의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기업의 제품은 팔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거기에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차근차근 쌓아왔다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우리는 오랜 기간 많은 비용을 들여 야심차게 준비해온 신제품이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이슈로 서둘러 시장에서 철수한 경우를 적잖이 보아왔습니다. 새로운 정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무리 철저히 대비를 한다 하더라도, 모든 이슈에 대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슈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자신과 비슷하거나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관심사를 공유한다고 믿는 집단을 신뢰하고 그들의 말에 귀기울입니다. 따라서 대중들이,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하고, 공유하고, 믿고, 따르는 곳의 이슈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나아가, 단순히 이슈를 모니터링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이 될 수도, 지원군이 될 수도, 혹은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집단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디플리가 주목하고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앞으로 사례 분석을 통해 차근차근 해결책을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Editor Jinwoo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