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핫플레이스는 어디?

나이들어도 놀줄 안다, 아니 잘 놀 수 있다!

연초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집계한 이래 지난해 처음으로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발표에 따르면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9402명으로 20대 인구(619만7486명)를 처음으로 추월했고, 65살 이상 고령인구는 973만411명(19.0%)으로 2022년보다 46만3121명이 늘어났습니다.

 

[기사] 70대 이상 노인, 20대 인구 추월…한국 초고령사회 1% 남았다 (한겨레, 2024.01.11)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에 비친 노인의 모습은 어떤가요? 성급히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노인을 보면, 집안에서 손자녀를 돌봐주거나 집안일을 도와주는 모습 아니면, 생계를 위해 시장이나 작은 가게에서 ‘평생 해오던 일'을 꾸준히, 계속 하는 모습, 이 두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말 어르신들은 집이나 동네에서, 아무런 재미도, 활력도 없이 지내고 계신 걸까요? 앞으로 노인이 될 우리들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걸까요? 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집에 틀어박혀 있으라는 법도 없고, 또 그렇게 살고 계시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어르신들은 대체 어디에 가시는 걸까요? 언뜻 떠오르는 곳은 탑골공원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많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솔직히 저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 수도권 전철 무임승하차 유형별 비중 ]

* 출처 : <서울교통공사_역별 권종별 우대권 승차현황>,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2년 12월 기준

 

 

얼마전 한 정치인이 언급해서 화제가 되었던 ‘수도권 전철 무임승하차' 데이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수도권 전철 무임승하차는 크게 경로 우대, 장애인 우대, 국가유공자 우대로 구분됩니다. 위 차트에서 보듯, 전체 무임승차 중 85%가량이 경로 우대에 해당하므로, 무임승하차 인원의 대부분은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경로 우대 인원이라고 간주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수도권 전철 무임승하차가 가장 많았던 역, 다시 말해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타고 내린 전철역은 어디일까요?

예상대로 종로3가가 1등입니다. 종로3가 역은 탑골공원과도 가깝고, 인사동도 가까워서 많이 찾으시나 봅니다. 그 다음으로 청량리, 고속터미널, 사당, 서울역 순이네요.

 

[ 65세 이상 고령층 승하차인원이 많은 전철역 TOP5 ]

* 출처 : <서울시 지하철 호선별·역별 유무임 승하차 인원 정보>,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3년 12월 기준

 

 

2~5위는 모두 교통의 요지라는 특성이 먼저 눈에 띕니다. 즉, 어르신들만 많이 오고가는 곳이 아니라, 유동인구 자체가 많은 곳이라는 거죠. 어르신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30위까지 한번 살펴보시죠.

 

[ 65세 이상 고령층 승하차인원이 많은 전철역 TOP30 ]

* 출처 : <서울시 지하철 호선별·역별 유무임 승하차 인원 정보>,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 2023년 12월 기준

 

 

영등포, 동대문, 제기동 등등 우리 상식으로 예상할만한 곳들이 순위권에 들었네요. 그런데, 30위까지 전철역 목록을 살펴보다 보니,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눈치 채셨나요? 아래 표를 보시면 1~30위권 전철역 중에 ‘전통시장’과 인접한 역이 많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역 인근에는 전통시장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가까운 곳만 표시해보았습니다.)

 

[ 무임승하차 TOP30 전철역 중 인근에 전통시장이 있는 전철역 ]

* 출처 : 네이버 지도 검색

 

 

확실히 시장 부근에서 어르신들을 많이 뵌 것 같습니다. 전통시장에는 구경거리가 많아 시간을 보내기 좋으며, 또 저렴하게 그리고 맛있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또한 비슷한 또래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마음이 더 편하시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이분들이라고 백화점이나 현대적인 쇼핑몰,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공간을 싫어하실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그런 곳에서는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인식,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그리고 돈이 있어도 무언가를 사려고 하면 익숙하지 못한 절차(예를 들어 키오스크 등)를 거쳐야 하기에, 마음 편하고 익숙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시는 걸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아래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노인들의 홍대’ ‘어르신들만 가는 곳’이라 불리며 낙후된 이미지가 강하던 경동시장이 젊은 세대가 앞다퉈 찾는 ‘힙’한 상권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내용이지요. 전통시장이라고 ‘힙'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전통시장에서라도 남녀노소,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싸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기사] 노인들의 홍대? NO!…新MZ 핫플 ‘경동시장’ [스페셜리포트] (매경이코노미, 2024.03.22)

 

하지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경동시장 같은 ‘어르신들의 홍대'가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면서, 오래되고 저렴한 가게는 점점 밀려나게 되고, 더불어 어르신들도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전통시장의 노포들은 현재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이 나이가 들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젊은이들이 몰려들면 젊은이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대형업체, 프랜차이즈 업체 등이 생길 것이고, 이는 반드시 임대료 상승 등을 불러와 이러한 속도는 더 빨라지겠지요.

 

그렇다고 젊은이들은 오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도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경동시장'에, ‘동묘앞 벼룩시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어르신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 지역의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노인과 젊은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 같습니다.

Editor Seungmi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