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휩쓴 탕후루 열풍, ‘아, 옛날이여!
우리가 사랑하던 먹거리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이선희라는 가수를 기억하시나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량으로 80~9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그 시절 ‘국민가수' 중 한 명이죠. 긴 활동기간 만큼이나 수많은 히트곡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1집에 수록된 ‘아, 옛날이여'라는 노래가 이 가수의 가창력을 특히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노래 그 자체말고도 또 다른 의미로 언론과 방송에 많이 인용되었었는데요, 그것은 이 노래가 ‘옛날에 잘 나갔던 시절을 그리워 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입니다. 상품이든, 기업이든, 또는 정치인이든 간에 이른바 ‘잘 나갔던 시절보다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ㅇㅇㅇ, 아, 옛날이여!'라는 식으로 많이 표현했지요. 느낌표까지 콕 찍어 가면서 말이죠. 앞으로 이 노래를 잘 모르는 세대가 더 많아지더라도, 유행을 타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 밈(meme)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요즘 길을 가다 ‘탕후루' 가게를 볼 때마다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분이라면 아마 ‘탕후루'를 한두 번쯤은 드셔 보셨을 겁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탕후루는 산사나무 열매 등의 과일에 설탕 시럽을 발라 굳혀 먹는 중국 화북 지역의 대표적인 겨울 간식으로, 최근에는 중화권 전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길거리 음식입니다. 원래는 겨울 간식이었으나, 차갑게 얼린 설탕 속에 달달하고 시원한 과즙이 크게 어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더운 여름철에 더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제는 대도시 학교 앞에서부터 지역 축제 현장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어디에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중국 간식 '탕후루'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심상치 않은데요, 하나는 폭발적인 인기로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고, 다른 하나로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인기로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는 점입니다.
[기사] "9개월 만에 유행 끝나, 하루 10개도 안 팔려" 탕후루 가게 사장 '한숨' (파이낸셜뉴스, 2024.03.21)
실제로 탕후루가 얼마나 빠르게 인기를 얻어갔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빠르게 그 유행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통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탕후루 판매점의 창업 및 폐업 수 변화 ]
* 출처 :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중 휴게음식점 인허가정보>, 행정안전부, 2024년 4월 기준
지난해 전국 탕후루 매장의 신규 영업허가 건 수가 2023년 7월엔 161건, 8월 235건, 9월 246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10월 들어서는 169건, 11월 70건, 12월 9건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폐업하는 경우도 조금씩 늘고 있네요.
매출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아래는 한국경제신문의 기사인데요, 국내 최대 탕후루 프랜차이즈 업체 왕가탕후루에 따르면 이 회사 가맹점의 10월 이후 매출은 지난 4~5월과 비교해 10~25%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탕후루에 대한 검색량도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기사] [단독] 탕후루 매장 폐업 급증…수도권 '비상'인 이유 (한국경제신문, 2023.11.15)
[ 구글 트렌드에서의 '탕후루' 관심도 변화 ]
* 출처 : 구글 트렌드, 2024년 4월 기준
우주로 날아갈 것만 같던 탕후루의 인기는 왜 이렇게 빠르게 식었을까요? 탕후루의 설탕이 아이들의 치아 건강에 나쁘다는 사실을 부모들이 깨달아서일까요? 아니면, 탕후루의 주재료가 되는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그럴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에서 탕후루는 ‘여름간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붕어빵', ‘군고구마' 등 강력한 경쟁자가 있는 겨울철이라 일시적으로 인기가 약해진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과당경쟁'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합니다. 장사가 좀 된다는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뛰어들어 이내 과당경쟁 상태가 됩니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채산성은 나빠지고, 가득이나 없는 돈을 끌어모아 창업한 영세상인들은 버티질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문제는 영세상인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에 해당 업종(여기에서는 탕후루)은 모두 사라집니다. 2016년에는 대만 카스테라가, 2014년에는 벌집 아이스크림이, 2012년에는 커피 번이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를 이용해 대만 카스테라와 탕후루의 경우를 비교해보았습니다. 대만 카스테라의 경우에는 2016년 10월부터 창업이 늘어나 2016년 12월에 47개 업체가 창업한 이후 급격히 감소해, 2017년 4월부터는 폐업 사업체의 수가 창업 사업체의 수를 넘어섰네요. 창폐업 비율로만 보자면 약 6개월 정도 유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탕후루의 경우에는 좀더 오래 유행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유행의 강도, 즉 창업의 규모가 대만 카스테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에, 유행이 사그라들면 그 피해도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 대만카스테라와 탕후루 판매점 창업 및 폐업 추이 비교 ]
* 출처 :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중 휴게음식점 인허가정보>, 행정안전부, 2024년 3월 기준
유행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유행이 없는 세상은 그야말로 지루한 세상일테니까요. 하지만 짧은 유행에 따라 창업하고 폐업하는 와중에 영세상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내 취향이 분명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취향과 무관하게 이른바 ‘요즘 뜨는 대세'만을 따라야 합니다. 언제까지 개인의 취향을, 자영업자의 생계를 유행에 떠 맡겨야 할까요?
먹고 살기 위해 유행에 맞춰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영세자영업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요즘 핫한 것을 좇는 소비자의 잘못도 아닙니다. 가맹점주는 망해도 프랜차이즈 본사는 이익을 보는 가맹구조, 프랜차이즈에 가입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운 시장구조, 나아가 자영업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경제구조,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사랑하는 먹거리를 없애고 있는 건 아닐까요?
Editor Jinwoo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