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 일해야 하는 노인
어르신들은 일하고 싶어서 일할까, 어쩔 수 없이 일할까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아마 제목은 모르더라도 이 노래 구절은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1962년 황정자라는 가수가 발표한 ‘노래가락 차차차'라는 노래인데요, 언뜻 들으면 ‘노는 것도 때가 있고, 늙으면 놀지도 못한다. 그러니 젊을 때 놀자’라는 다소 불량(?)한 노래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노래는 1960년대 전후 재건과정에서 엄청난 노동에 시달리던 당시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입니다. 우리가 조롱하던 북한의 「새벽별보기 운동」, 「천리마 운동」 못지않게 당시 우리나라의 노동강도는 무척이나 셌었고요. OECD 국가들 중 가장 긴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우리 근로문화는 나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셈입니다. 사람 말고는 가진 자원이라고는 없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어떨까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의 결과를 보면, 70세 이상 고령인구의 고용률은 꾸준히 증가해서, 2023년에는 10명 중 3명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 70세 이상 연령층의 고용률과 취업자 수 ]
* 출처 :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 통계청
예전보다 고령층의 신체적 건강이 좋아졌고, 고령층의 기술과 경험을 요구하는 일자리도 많아졌을 겁니다. 또 혹자는 요즘같은 시기에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스스로 일하고 싶고,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은 고령층이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 이 분들은 정말 스스로 원해서 일하는 걸까요, 아니면 일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걸까요? 연령대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 55~79세 연령층 중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수와 비율 ]
* 출처 :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 통계청
2014년부터 ‘장래에 일하기를 원한다'는 고령층(55-79세) 인구 비중이 꾸준히 증가해왔네요. 어쨌든 ‘원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일하기를 원하는 구체적인 이유'도 살펴봐야겠지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에는 왜 일하려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 55~79세 고령층이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 ]
* 출처 :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 통계청
이를 경제적인 이유와 비경제적인 이유로 구분해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55~79세 고령층이 일하고 싶은 이유 ]
* 출처 :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부가조사>, 통계청
생활비에 보태겠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건강/근로의 즐거움 등등 비경제적인 이유보다 확실히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세인데요, 2014년 이후로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2019년 이후로는 다시 경제적인 이유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 궁금하죠? 직접적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아래와 같은 제도의 변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2021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부양을 받지 못하지만 생계급여도 받을 수 없었던 일부 고령층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2021년부터 소득하위 70% 이하에게 월 최대 30만원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소득하위 40% 이하만 받을 수 있었으니, 대상자가 확대된 것이죠.
2023년에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도 확대되고 재산기준도 완화되어, 그 전에 비해 35,000여 가구가 생계급여를, 13,000여 가구가 의료급여를 새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고령층만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빈곤이 상당한 우리 현실을 보건데, 고령층에게도 혜택이 많이 돌아갔을 것입니다.
지원만 확대된 것은 아닙니다. 2022년부터는 고령자를 고용하는 사업체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었습니다.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고령자 고용지원금」 을 지원한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2019년 이후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일하는 고령층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추세는 고령층의 ‘근로능력’ 또는 ‘근로여력’이 좋아져서 그렇다기보다는, 정책적인 변화때문에 그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이 말은 정부 정책이 변화하거나 경제사정이 나빠진다면, 얼마든지 다시 예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정부와 우리 사회는 이러한 현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제도적 보완을 지속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ditor Seungmi Yang